제8강 사마리아 사람들도 성신을 받음
"기독교의 새로운 정신이 지배했다는 중요한 증적(證迹)의 하나입니다. 즉 이것은 전통적인 유대교적인 사상에서 해탈해서 기독교적인 정신으로 올라간 한 중요한 증거로서 이러한 식으로만 발전해 나아가면 다음에는 이방 사람과 세계 어디로든지 뻗어나아갈 것이고 사실상 그렇게 해서 뻗어 나아간 것입니다.” 기독교의 새로운 정신이 지배하게 하옵소서.
"오늘날 교회에 있으면서 교회적인 생활을 여러 모로 볼 때 ‘아, 이것이 부정당하고 부당하니까 혹은 적어도 원칙에 부합되지 않으니까 내가 여기에서 벗어나야겠다’ 하고 느낀다고 할지라도 그저 느끼는 정도에 불과하지 그 껍데기를 벗고 구각(舊殼)을 탈각(脫却 : 벗어나고 물리침)하고 파쇄(破碎)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오늘날의 신자뿐 아니라 오늘날의 교역자에게도 쉬운 것이 아닙니다.” 부정당한 구각을 탈각하고 파쇄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그것에 하나도 그른 소리가 없고 다 옳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일단 행동을 해서 옮기려고 하면 ‘그래도 뭐, 우리가 갈 것이 있는가. 그냥 여기에 있는 것이 좋지’ 하고 그냥 있는 데에 주저앉아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관성이라고 할 것인데 그런 데에서 벗어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부정당한 타성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세례를 받은 사람이 성신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무엇으로 아느냐 하면 그것은 알기가 대단히 힘든 이야기입니다.”“세례를 준다는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알고 확실히 믿고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그리고 중생했다는 증거를 적어도 자기의 신앙 태도와 고백의 태도로 분명히 표시할 때 세례를 주는 것이지 중생했는지의 여부를 목사가 판단할 수 없는데도 ‘세례 문답에 대답을 잘했으니 세례를 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역사(役事)로 거기에 죄를 씻으심과 중생의 씻음과 성신으로 말미암은 새롭게 하심이 있는 것을 분명히 표시하기 위해서 주는 것입니다.”성신의 충만함이 있게 하옵소서.
"자연스럽기보다는 아주 종교적입니다. 무엇인가를 만들고 종교적으로 자꾸자꾸 무엇을 형성해 나가는 강한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관이 작다는 것과 믿음이 서로 다른 것을 가지고 자꾸 이야기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도 복음을 믿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살려고 하고 고생하며 사는 사람들이니까 우리가 형제로서 늘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지고 대하는 것이 정당하지 자꾸 비판하고 논란하고 또 믿음의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 자꾸 논란하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세계관이나 믿음의 차이를 가지고 자꾸 이야기하고 변론하지 않게 하옵소서.
"성례는 하나님의 말씀을 토대로 하고 말씀을 변증하기 위한 것이지 말씀을 떠나서 그것만이 독립적인 의미를 가지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 자체가 신통력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신통력을 가지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아마 하나님의 말씀도 말만으로서는 신통력을 가지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것이 개혁 교회의 아주 분명한 태도입니다. 긴 이론을 가지고 자꾸 다투기보다 성경이 명백하게 가르친 것을 우리가 올바로 배우게 하옵소서
“그래서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맡은 의무가 무엇인지를 각성한 대로 이제부터 신실히 다 행하겠다는 선언을 할 뿐 아니라 또한 교회라는 것은 무엇이므로 자기가 교회에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믿는다는 각성이 들어가야 교회의 회원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맡은 의무를 다 행하게 하시고, 교회의 지체로서 할 바를 성실히 수행하게 하옵소서.
"교회가 하나님의 성례와 교회에 들어오는 입교례(入敎禮) 혹은 소위 봉인식(封印式)을 너무도 소홀하게 다루는 데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교회에 왜 그렇게 분열이 생기느냐 하면 무자격한 사람들이 교인 노릇을 하는 까닭에 그렇습니다. 무자격한 사람들, 즉 각성이 없고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교인으로서의 자기의 권리만을 자꾸 주장하는 통에 언제나 교회에 분요(紛擾, 어지러움)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교회가 무엇인지 알고 교회에 참여하게 하옵소서
“늘 주의해서 교회가 교인 혹은 교회의 회원을 받을 때에는 세례를 받았다는 조건하에서 덮어놓고 받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교인이 되기 전에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확실한 고백과 확실한 이해가 있어야 하고 교회에 대한 자진 봉사의 간절한 열의가 성신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이는 것을 확인했을 때 비로소 교인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그 교회가 가지고 있는 전체의 신앙의 조목이나 신앙의 기조에 대해서 분명히 깨닫고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 대한 자진 봉사의 간절한 열의가 성신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이게 하옵소서.
“다른 교회에 있다가 가령 우리 교회로 왔다고 하면 그가 다른 교회에서 무슨 직분을 하다 왔으니까 우리 교회에 와서도 당장에 직분자가 된다든지 혹은 직분자는 안 되더라도 얼른 우리 교회의 정교인이 된다든지 할 수 있겠습니까?” “노회에 소속한 교회들은 ‘우리는 노회의 치리와 교리적인 제시를 공동으로 승인한다’ 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노회는 큰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다른 교회에서 이쪽으로 오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습니까? 못 막는 것입니다. 다른 교회에서 무슨 야단을 내고 왔든지 간에 이쪽으로 왔으면 받아줄 수밖에 없습니다. 저쪽에서 정당하게 이명(移名) 증서를 해 보내든지 통고를 해서 보냈으면 이명을 받아 줄 의무가 있는 것이지 ‘아, 당신은 안 되겠소’ 하고 이쪽에서 마음대로 퇴짜를 놓을 수 없습니다. 노회가 부인하거나 그 사람을 치리하지 않는 이상에는 받아야 합니다.”
“중생은 신약 시대에 비로소 있는 것이고, 구약 시대에는 별다른 조건하에서 구원을 받은 것같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소위 세대주의적인 교훈입니다.” "여기의 이 구절 때문에 쉐이퍼 박사 같은 사람은 성신을 그렇게 해석한 것입니다. ‘사마리아를 보아라. 사마리아도 그 당시에 성신을 못 받고 세례 받은 다음에 얼마 있다가 사도들이 가니까 성신을 받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그때는 성신께서 구약적인 역사로 역사하신 것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구약적인 역사가 어디 따로 있습니까? 성신은 언제든지 동일한 성신으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성신께서 하나하나 가르쳐주시고 깨닫게 하시며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여 주옵소서.
“세례를 받을 만한 고백은 중생의 고백입니다.” “그리고 중생의 고백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고 믿는다. 나는 죄인인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속(贖)하신다’ 하는 사실을 믿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속하시고 나의 구주로서 나에게 새로운 생명이 되신다’ 하는 것을 믿어서 고백하게 되면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이런 조건하에서 세례를 받습니다. 그런 고백은 어떤 사람이 하느냐 하면 성신께서 감화하셔서 그렇게 고백할 심정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진하고 자원해서 이런 고백을 하게 될 때에는 그 고백이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성신께서 역사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3을 보면 “또 성신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主)시라 할 수 없느니라” 하고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속하시고 나의 구주로서 나에게 새로운 생명이 되심을 감사드리옵나이다.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다시 나지 아니하고는 보통 인간의 목숨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신의 일을 받지 않고 도리어 미련하게 여기는 것이고 또한 깨닫지도 못하는 것이다’(고전 2:14 참조)” “성신 충만이라고 할 때는 그 사람이 가장 그리스도인답게 되는 것이 충만의 중요한 내용이지 잠시 종교적인 황홀경 가운데 들어가는 것이 충만의 중요한 내용은 아닙니다.” 가장 그리스도인다운 생활을 할 참된 능력을 주옵소서.
“그 사도들과 오늘날의 저희들이 다른 사람이 아니고 한 혈맥으로 지음을 받아서 하나님께서 들어 쓰실 때에는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자유롭게 쓰시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성신의 충만한 역사는 저희에게 늘 있어야 하겠사오니 이 충만한 역사가 이 교회에 역사하여서 아버지의 영광을 크고 능력 있게 증시하고 전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1965년 9월 12일 주일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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