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1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58쪽
"동일한 하나님을 모시고 동일한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고 동일한 기초적인 신 개념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그가 교회를 핍박할 때에는 하나님께 대한 동일한 정도의 이해를 가지고 핍박한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가 볼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하나님께 대한 기초적인 개념이 동일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대한 이해의 심천(深淺), 즉 깊고 옅고 한 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형제가 될 수 있게도 하고 혹은 위하여 봉사해야 할 대상들을 전연 반대로 핍박하고 괴롭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이해가 깊어지게 하옵소서.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2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60쪽
"예수 믿는 사람이 히브리주의적인 할례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형식의 문제일 뿐입니다. 형식이 아니라 할례의 거룩하신 본의를 따라서 우리도 하나님의 인 치심과 언약의 확증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참된 기독교인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역시 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으러 성전에 들어가셨던 것을 여러분은 아실 것입니다(눅 2:21 참조)."
성신의 인 치심을 믿고 의지하여 살아가게 하옵소서.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3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61쪽
"바울 선생이 과거에 가지고 있던 것을 해로 여겼다는 것은 참으로 진실하고 본질적인 기독교의 오의(奧義,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지니고 있는 깊은 뜻) 가운데 들어가기 위한 것이지 포기나 파괴 자체를 위하여 그렇게 한 것은 아닙니다." "형성적인 기독교(formal Christianity)란 사람이 무엇 무엇을 꾸려서 기독교의 의(義)를 이루어 나가려고 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의지의 작용에 한한 것이 아니고 사람이 지어낸 어떠한 종교적 감정도 해당됩니다. 예를 들면 '성자(聖者)가 되어야겠다'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진실하고 본질적인 기독교의 오의 가운데 들어가게 하옵소서.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4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62쪽
"왜 그렇게 형성적인 것을 나쁘다고 해야 하느냐 할 때 사도 바울 선생이 말한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더욱 알려고 하고 가장 고도적인 그리스도, 즉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을 좀 더 올바로 깊이 알고 또 그 거룩하신 은혜와 권능과 고난에도 참여한다는 이 확실한 목표하에서 과거에 가지고 있던 모든 형성적인 것을 우리가 정죄하게 되는 것이지 목적 없이 정죄만 하면 파괴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더욱 알려고 하고 가장 고도적인 그리스도, 즉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을 좀 더 올바로 깊이 알고 또 그 거룩하신 은혜와 권능과 고난에도 참여하게 하옵소서.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5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62쪽
"'최선이 없으면 차선이라도 붙들고 있어야 한다' 하는 것은 또한 기독교적인 정당한 태도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진리를 파악해야 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다 마찬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 20:8) 하는 말씀이 제4계명에 분명히 있는데도 안식일을 안 지키고 산다면 무엇 때문에 안 지키는 것인지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참된 본질을 배우고 익히게 하옵소서.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6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63쪽
"참된 것을 잡아야 충만함이 생기는 것이지 참된 것도 못 잡고 가지고 있던 것도 버릴 때에는 전연 공허하게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기도도 전연 하지 않으면서 기도하는 참된 경계(境界)를 안다고 하거나 성경 공부를 전연 하지 않으면서 신앙의 참된 경계를 안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렇게는 안 되는 것입니다."
참된 것을 잡아 충만하게 하옵소서.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7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64쪽
"율법주의나 계율주의나 형성주의(formalism)가 기독교의 본질이 아니라고 가르쳤으면 '그러면 본질은 무엇인가' 해서 그것을 파악해야지 파악하지 못할 때에는 무엇이 되느냐 하면 기독교인이라 하면서 가장 껄렁껄렁한 사람이 되거나 혹은 아마 아주 자유로운 자유주의자(liberalist)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자유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결국 불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본질을 배우고 깨닫고 익히게 하옵소서.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8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64쪽
"아무것도 없는 사람에게 덮어놓고 하나님께서 가장 진수(眞髓)와 진리를 그냥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노력하고 받고자 하는 사람에게 무엇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진수와 진리를 받고자 노력하게 하옵소서.
개혁 신학의 사변화와 경건주의의 발흥 1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65쪽
"경건주의가 왜 생겼는가 할 때 '이렇게 사변적이고 공허하고 신앙에 실내용이 없으면서 신항(信項)과 건조한 신학만 가지고 있을 바에는 차라리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과 깊고 정적(情的)인 신비한 교통을 하는 것이 더 낫지 이렇게 자꾸 주둥이만 까고 잔소리만 해서 되겠느냐' 하는 것이 독일의 대학교에 주로 돌아다니던 기풍이었습니다."
깊고 오묘한 하나님의 계시를 떠나지 않게 하시고, 고요하고 잠잠한 가운데 주의 말씀의 은혜 가운데 장성해 나가게 하시옵소서.
개혁 신학의 사변화와 경건주의의 발흥 2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66쪽
"물론 루터 선생 자신에게는 그것이 잘 통합되고 조절되어서 문제가 없었습니다. 신앙과 신학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잘 조절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루터 선생이 가지고 있던 신학적 태도는 기독인의 자유를 강조한 나머지 자칫 그것이 철학적으로 흘러갈 흠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중략) 오늘날은 루터교 자체가 가지고 있는 신학적인 신축 유연성(flexibility)이 얼마든지 고등 비평이나 자유주의를 포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실상 굉장히 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과 신학이 잘 통합되고 조절되게 하옵소서.
개혁 신학의 사변화와 경건주의의 발흥 3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67쪽
"그것은 마치 장로교에서 적어도 몇 백 년이 지나니까 4백 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다 칼빈 선생의 지도력과 지도한 정신에서 떠나는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어느 시대든지 자기가 받아 가지고 있는 정신을 오해하지 않고 붙들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고, 그러려면 모든 것을 일방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늘 주의해야 합니다."
칼빈 선생님으로부터 받아 가지고 있는 정신을 오해하지 않고 붙들고 있게 하시고, 일방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늘 주의하게 하옵소서.
개혁 신학의 사변화와 경건주의의 발흥 4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68쪽
"우리 교회에서도 무엇이든지 배우면 배운 것을 자꾸 성숙시키는 방향으로 갈 것이지 익지도 않았으면서 과실 노릇하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나이가 삼십 되어서 '나는 다 익었느니라' 하는 생각을 하지 말고 저처럼 이렇게 오십이 넘어도 '그래도 아직 멀었다. 익다니 말이 되느냐' 하고 끊임없이 생각하고 탐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고 탐구하는 것은 머리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가운데 자꾸 증험해야 합니다. 증험해서 피할 수 없는 확증을 자꾸 쥐고 살아 나가는 이것이 더 중요한 일입니다."
배운 것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탐구하고 생활 가운데 자꾸 증험해서 피할 수 없는 확증을 자꾸 쥐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근본주의와 세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 교회 1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70쪽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빌 2:3 참조) 하는 성경 말씀이 있는데 그것은 덮어놓고 가질 수 있는 정감은 아닙니다. 분명하고 확실한 판단하에서 비로소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덮어놓고 '아, 저 사람은 나보다 낫지' 하고 한번 느껴 보려고 해서 느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어디로 보든지 못났는데 '나보다 낫다고 생각해 보라'고 한다고 해서 그렇게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디로 보든지 못났다고 보는 그 보는 법을 고치면 차츰차츰 발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신앙만이 제일이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이런 원칙(principle)만이 제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쌓았던 이 성(城)은 자기의 것에 불과한 것이고, 저 사람은 하나님께서 어떤 은사로 어떻게 인도하실는지 내가 알지 못하니까 그 사람이 서 있는 자리를 내가 올바로 보기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자기의 성 안에 갇혀 있는 동안에는 안 됩니다."
내 형제를 하나님께서 어떤 은사로 어떻게 인도하실는지 내가 알지 못합니다. 형제가 서 있는 자리를 내가 올바로 보게 하옵소서.
근본주의와 세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 교회 2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71쪽
"경건주의가 가지고 있던 주요한 약점은 (중략) 세상의 많은 중생(衆生)이 당하고 있는 괴롬과 슬픔과 어려움에 대해서 공감 있게 생각해 줄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자기만 옳다 하면서 모든 것을 관견(管見 : 대롱 구멍으로 사물을 본다는 뜻으로, 좁은 소견이나 자기의 소견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당하고 있는 괴롬과 슬픔과 어려움에 대해서 공감 있게 생각해 줄 마음의 여유가 있게 하옵소서. 자기만 옳다 하면서 모든 것을 관견하지 않게 하옵소서.
근본주의와 세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 교회 3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72쪽
"(세대주의는) 레그눔 포텐티아에(regnum potentiae, 권능의 왕국)의 왕으로서 당신의 그 거룩하신 능력을 역사 위에 친히 나타내신다는 사실에 대해서 해석할 기능도 없는 것입니다." "대중이 당하는 여항간(閭巷間, 시골 마을의 사회)의 사소한 문제나 큰 문제에 대해서 그것을 하나님의 나라라는 관점에서 깊이 해석하지 못할 뿐 아니라 거기에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아무런 공식(formula)이나 원칙(principle)을 가지지 못한 것입니다."
일상의 사소한 문제나 큰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깊이 해석할 수 있게 하옵소서.
핍박은 형제라는 사람에게서 오기가 쉬움 1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75쪽
"아침에 일어나서 당장 첫눈에 성경에 있는 바 복을 주시는 축복의 말씀이 눈에 띄어야 복이 있는 것이지 일어나서 아침에 신문을 보니까 또 무슨 데모가 나서 누구를 두들겼다는 이야기를 본다면 '재수 없구나'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될 수 있는 대로 아침에 일어나서 세속적인 것부터 안 보고 성경부터 쳐다보아야겠다' 하는 식으로 산다면, 정통파 유대인들이 '이를 닦고 양치를 한 다음에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을 찬송하고 그 다음에 무슨 다른 말을 하겠다' 하는 것과 비교해 볼 때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하게 하옵소서.
핍박은 형제라는 사람에게서 오기가 쉬움 2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76쪽
"같은 신 개념을 가진 처지 안에서 같은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오히려 좀 더 본질적이었던 사람을 박해한 사실이 여기에 분명히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령 15세기에 가톨릭이 가지고 있던 하나님께 대한 생각과 그 후에 프로테스탄트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 무엇이 얼마나 다르냐 하면 굉장히 다른 것은 없습니다. 어떤 지엽적인 것이나 자세한 이야기를 하면 자꾸 서로 달라져 나가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그 가톨릭이 종교 재판이라는 명의하에서 얼마나 많은 참된 하나님의 종들을 죽이고 불에 태우고 물에 빠뜨려 죽였습니까? 이 문제는 신 개념이 근본적으로 달라서 핍박한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어느 때든지 사실상 참된 핍박은 형제라고 하는 자에게서 오기 쉬운 것입니다. 형제라고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핍박하기가 쉬운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자기네 개념과 같지 않거나 자기네가 가지고 있는 종교 감정에 부합하지 않으면 그냥 반대하고 핍박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전형적인 예를 여기 사울이 교회를 핍박한 데서 먼저 보는 것입니다."
개념이나 종교 감정이 다르다고 반대하지 않게 하옵소서.
기도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77쪽
"우맹(愚氓)이요 소경이요 재와 먼지만도 못하다는 것을 항상 느끼고, 고요하고 잠잠한 가운데 주의 말씀의 은혜 가운데 장성해 나가게 하시옵소서"
1965년 8월 22일 주일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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