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강 스데반의 최후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심
사울의 형식주의와 스데반의 본질주의 1 <사도행전3>, 제5강 스데반의 최후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심 중 116쪽
"'양태는 본질의 표시에 불과한 까닭에 양태 자체에 거룩하다는 가치를 부여하기보다는 본질이 거룩한즉 필연적으로 양태가 거룩한 것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하는 것이 스데반적인 논리입니다."
생활의 형식에 앞서 본질이 거룩하게 하옵소서.
사울의 형식주의와 스데반의 본질주의 2 <사도행전3>, 제5강 스데반의 최후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심 중 116쪽
"'하나님은 이 산에도 거하시는 것이고 또 저 갈대아 우르와 같은 마구 우상을 섬기는 그런 사회에서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거기에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것이 아니냐. 그렇다면 하란에도 계신 것이고 하나님은 어디든지 불러내신 그 자리에 같이 계시지 않으냐. 즉 하나님이 어디에서든지 사람과 더불어 교통하시는 데서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sanctuary)가 성립되는 것이지 하필 왈 예루살렘에만 거하시겠느냐' 해서 참으로 기독교의 본질적인 것을 드러냈습니다."
어디에서든지 하나님과 더불어 교통하게 하옵소서.
사울의 형식주의와 스데반의 본질주의 3 <사도행전3>, 제5강 스데반의 최후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심 중 119쪽
"무엇이 거룩하냐 할 때 최후로 말하면 안식일을 안식일로 제정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존재가 먼저 거룩하고, 둘째는 안식일을 제정하신 하나님의 목표가 거룩하고 하나님의 계획이 거룩한 것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그 거룩한 계획하에서 이루어진 프로그램이나 설계도도 역시 거룩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설계도 자체가 홀로 거룩할 요소를 가진 것은 아닙니다. 안식일 날이라고 해서 다른 날과 특별히 다른 이상한 날이 될 것은 없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문제는 하나님께서 이날을 거룩히 구별하셨다는 그 사실이 항상 거룩한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우선적으로 하나님께 마음을 두게 하옵소서.
사울의 형식주의와 스데반의 본질주의 4 <사도행전3>, 제5강 스데반의 최후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심 중 119쪽
"문제는 그 나무의 열매 자체가 구별되었다기보다는 그것을 명령하신 하나님의 명령 자체가 늘 거룩한 것입니다. 그런고로 제일 중요한 것은 그 명령을 준행한다는 점에 있지 열매를 먹는다든지 안 먹는다든지 하는 식으로 먹는 문제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먹지 말라' 하셨으니 먹지 말라는 그 명령을 지킨다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나가게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붙들어 인도하여 주옵소서.
사울의 형식주의와 스데반의 본질주의 5 <사도행전3>, 제5강 스데반의 최후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심 중 120쪽
"안식일을 구별하셨으면 안식일을 구별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있어서 그 거룩하신 목적하에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날을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써라' 하신 까닭에 그날을 구별해서 쓰는 것이지 안식일 새벽으로 쑥 들어가면 그 시간부터는 이상하고 새로운 공기가 돌고 눈에 보이지 않는 무슨 이상하고 새로운 우주선(宇宙線) 같은 것이 꽉 지배해서 그날만은 거룩하다는 특별한 양상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중략) 그 사람이 그날을 거룩하게 보내야 하는 것이고 마음 가운데 그날을 구별하는 확실한 목적의식이 있어야 하고 확실한 태도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일을 구별하는 확실한 목적의식이 있게 하옵소서.
스데반의 최후 1 <사도행전3>, 제5강 스데반의 최후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심 중 122쪽
"요컨대 여기에서 특이한 것은 스데반이 순교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영광으로 입증하시는 거룩한 사실로서 그가 하늘을 바라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서신 것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는 것과 그 다음에는 예수님 앞에 자기의 영혼을 부탁했다는 것, 그 다음에는 자기의 대적 혹은 원수들의 죄에 대해서 용서하는 성신의 크고 충만한 능력이 그 안에 있었다는 것, 과연 승리자라는 것, 죄가 그를 지배하지 못하고 성신님이 그를 온전히 끝까지 지배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성신의 지배를 받게 하옵소서.
스데반의 최후 2 <사도행전3>, 제5강 스데반의 최후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심 중 123쪽
"사실상 예수를 믿고 그 영혼과 육신이 서로 분리되는 것은 자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현상으로는 믿지 않는 사람이 죽는 현상과 같지만 죽는다는 참된 의미가 없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참으로 죽는 것입니다. 더 소망이 없이 이제는 영원한 죽음 가운데 완전히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자는 것입니다. 얼마 후면 훨씬 영광스러운 육신으로 다시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고 평안한 죽음을 맞이하게 하옵소서.
스데반의 최후 3 <사도행전3>, 제5강 스데반의 최후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심 중 123쪽
"요동하는 것이 바다 물결과 같아서 야단 내고 소리 지르고 막 그냥 부르짖고 울부짖고 치고 하여 마귀의 화신들과 같고 사귀(邪鬼) 들린 사람들과 같이 돌질하는 이 무서운 살인자들 속에서 그는 마치 고요히 자는 자와 같이 있었는데 이것은 큰 대조입니다. 이것이 스데반의 위대한 순교 장면입니다."
세상 풍파 속에서 고요하고 평안하게 지내게 하옵소서.
예루살렘 교회에 원망이 생김 <사도행전3>, 제5강 스데반의 최후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심 중 126쪽
"원래 교회에서는 경우를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더군다나 신령한 가정입니다. 신령한 가정에서 무엇을 할 때 경위를 자꾸 따진다는 것은 분명히 사도의 가르침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교회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까닭에 항상 자기 자신이 당하는 괴로움을 크게 생각하고, 자기가 어떤 물건을 상실했든지 무엇을 잃었든지 없어졌든지 자기에게서 그것이 나가든지 해서 말하자면 자기의 이해로 타산을 할 때 나오는 결손만 크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무엇인지 제대로 가르침을 받게 하시고, 자기의 이해로 타산을 할 때 나오는 결손만을 크게 생각하지 않게 하옵소서.
큰 핍박으로 예수살렘 교회를 흩으심 1 <사도행전3>, 제5강 스데반의 최후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심 중 128쪽
"자기들끼리 떨어지지 않고 예수님이 부탁하신 큰 위임령(commission)인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행 1:8) 하는 말씀을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프로그램을 세워서 이행하지 못하니까 이번에는 하나님이 치셔서 흩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이행하게 하옵소서.
큰 핍박으로 예수살렘 교회를 흩으심 2 <사도행전3>, 제5강 스데반의 최후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심 중 129쪽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방식입니다. 저조된 교회의 정도가 자꾸 낮아져서 자기 스스로의 감정이나 생각 가운데 이리 삐치고 저리 삐칠 때 하나님은 그렇게 이리 삐치고 저리 삐칠 마음의 여유가 없게 만들어 버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스스로 반성하고 깨우쳐, 하나님의 징계를 면하게 하옵소서.
큰 핍박으로 예수살렘 교회를 흩으심 3 <사도행전3>, 제5강 스데반의 최후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심 중 129쪽
"교회로서는 이 핍박이 전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신의 역사와 또한 성신의 충만함을 받은 사도들의 적극적인 노력하에서 그것이 도(道)를 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경우를 따지지 않고 거룩한 표준하에서 잘 자랐다면, 경우를 따지고 교회를 조직하는 이런저런 문제보다는 말씀을 자꾸 널리 퍼뜨리는 데 주력해서 핍박을 받지 않고도 프로그램이 섰을 듯합니다."
경우를 따지지 않고 거룩한 표준하에서 잘 자라게 하옵소서.
큰 핍박으로 예수살렘 교회를 흩으심 4 <사도행전3>, 제5강 스데반의 최후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심 중 129쪽
"살림의 문제가 앞서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거룩한 일 혹은 사업과 거룩한 목적을 향한 진행은 정돈(停 머무를 정, 頓 조아릴 돈)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바르게 진행하려면 진행하기 전에 자기가 정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정비되는 일에 시간을 보내고 정력을 다 넣어 놓으면 교회는 진행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요새 교회는 흔히 자체의 살림 하나 잘하는 데에 모든 시간을 다 보내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거룩한 목적을 향해 늘 전진하게 하옵소서.
큰 핍박으로 예수살렘 교회를 흩으심 5 <사도행전3>, 제5강 스데반의 최후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심 중 130쪽
"교회라는 기업을 가지고 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하나의 기업(enterprise)으로 커 가는 것이 반드시 무슨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맡기신 거룩한 사명과 거룩한 목적을 향한 그의 진행이 명백해야 하는데 살림하느라고 다른 것을 다 잊어버린다면 일이 아닙니다. 살림이라는 것은 저절로 되어야 합니다. 저절로 어떻게 됩니까? 고도적으로 성신의 감화와 말씀의 교훈 가운데 착념하고 있을 동안에는 문제가 안 생깁니다."
고도적으로 성신의 감화와 말씀의 교훈 가운데 착념하게 하옵소서.
큰 핍박으로 예수살렘 교회를 흩으심 6 <사도행전3>, 제5강 스데반의 최후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심 중 130쪽
"우리 교회에서는 처음부터 임명을 하지 않고 자임하는 것으로써 임명을 대신하자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가급적 고도적인 원칙하에서 움직일 때에 교회가 자기의 사명에 대한 각성에서 빠르게 자라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빠르게 목적을 향해서 진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할 때는 조직하는 것입니다. 조직하게 되면 조직이라는 사실에 의무를 가지게 되니까 의무를 가진 다음부터는 의무라는 관념이 자기를 지배합니다."
기꺼이 자임하여 빠르게 목적을 향해서 나아가게 하옵소서.
큰 핍박으로 예수살렘 교회를 흩으심 7 <사도행전3>, 제5강 스데반의 최후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심 중 130쪽
"의무를 가지기 전에는 하늘로부터 온 거룩하고 신령한 책무가 자기를 지배하게 되지만, 교회라는 사회가 그에게 일종의 책무를 부과하고 짊어지워 주어서 그것이 자기를 지배하면 첫째로, '무엇보다도 그것을 감당해야 하겠다' 하는 의무감이 들고 둘째는 잘못되면 '나는 그것만 감당하면 다 되었다' 하는 생각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입니다. (중략) 조직을 하면 저조적이고 저회적인 인심이 점점 더 타락하는 것을 막기는 하지만, 그러나 교회의 거룩한 목적을 위한 자기의 강력한 진행에는 대단히 허덕거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온 거룩하고 신령한 책무가 지배하게 하옵시며, 교회의 거룩한 목적을 향해 강력하게 진행해 나가게 하옵소서.
큰 핍박으로 예수살렘 교회를 흩으심 8 <사도행전3>, 제5강 스데반의 최후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심 중 131쪽
"하나님께서 그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자발적으로 스스로의 계획 가운데 진행하는 데에 맡겨 놓으시지 않고 하나님의 강력한 손으로 막 밀어젖히신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판단하면 주께 정죄를 받지 않지만, 우리가 판단 혹은 징계를 받는 것은 주께로부터 심판을 받는 것이니라'(고전 11:31-32 참조) (중략) 내가 판단해서 '아, 이래서는 안 되겠다' 하고서는 척척 끌고 나가면 좋지만,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할 때에는 이번에는 주께서 징계하신다는 말입니다."
제 자신의 위치에서 자발적으로 스스로 계획을 세워 진행해 나가게 하옵소서.
큰 핍박으로 예수살렘 교회를 흩으심 9
<사도행전3>, 제5강 스데반의 최후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심 중 132쪽
"문제를 일으키면 문제가 있으니까 문제를 처리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모두 각성해서 '문제를 일으킬 것 없다' 하고서는 문제를 당하는 그 자리에서 딱 풀어 버리면 문제가 없지만, 항상 문제를 일으켜서 이리저리 다 퍼져서 교회 전체가 그것을 논의할 수밖에 없게 될 때는 그것을 교회에서 처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처리하게 되면 그만큼 문제는 풀어지지만 그렇게 문제가 풀어지는 것이 전진은 아닙니다. 퇴보하려는 것을 그냥 원상으로 보귀시키는 데에 주력하는 것일 뿐입니다."
문제가 있을 때, 문제를 당하는 그 자리에서 딱 풀어 버리게 하옵소서.
기도 <사도행전3>, 제5강 스데반의 최후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심 중 133쪽
"저희가 스스로 살폈으면 주께로부터 심판을 받지 아니하겠지만, 저희가 심판을 받는 것은 정죄 혹은 징벌을 받는 것과 같은 무서운 현상이로소이다. 주여, 주께서는 저희를 정죄치 아니하시지만 저희는 정죄받는 사람이 받는 형벌과 비슷한 징계 가운데 얼마든지 빠져 들어갈 수 있사옵니다. 살아계신 주님의 그 무서운 징계의 손이 사랑의 손이시지만 동시에 무서운 공의의 손이요 또한 교정의 손이요 책망의 손인 것을 깨닫고 저희가 하나님의 무서운 채찍으로서의 책망을 받기 전에 말씀으로서의 책망을 달게 받고 경고를 받을 수 있게 하시옵소서. 이리하여 항상 저희 자신이 너무 부족하고 결핍되어 있는 것을 올바로 볼 수 있는 정당한 자세를 저희에게 허락하옵소서."
1965년 8월 15일 주일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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