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강 데살로니가에 전한 복음

종교적 선입견의 문제와 개혁 정신의 태도 1, <사도행전7>, 제10강 데살로니가에 전한 복음, 231쪽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하나님 말씀을 전파하면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정도 안에서 다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은 특별히 종교적인 선입견(prejudice)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도 보면 소동을 일으키는 유대 사람들은 다 종교적인 선입견에서 그런 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강렬한 종교적인 선입관이 있습니다.”

근본적인 질문을 하면서 비판하고 그것을 재평가하고 취사(取捨)하는 태도를 늘 취하게 하옵소서.

종교적 선입견의 문제와 개혁 정신의 태도 2 <사도행전7>, 제10강 데살로니가에 전한 복음, 232쪽

“처음에 무엇을 받아들였을 때에 ‘그것이 옳겠거니’ 하고 받아들여 놓으면 그것이 나중에 자기에게 거의 전통이 되고 절대화된 우상으로 존재하게 되기가 쉬운 것입니다. 가령 개혁 교회의 신앙이라고 해서 개혁 신앙과 신학을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그것 자체가 우상이 되기가 쉽습니다. 개혁을 한다는 것이 중요하지 ‘개혁 신학’이라는 체계를 죽겠다고 쥐고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으면 깨닫고 거기에 자기를 비춰보고, 자기 자신의 사상 체계를 비추어 보아서 완고한 것이나 그릇된 것이나 자기 식 생각에 그냥 서 있으면 다른 것을 평가하는 평가의 척도나 원칙(principle)으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언제든지 다시 신선하게 비판해 보고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으면 깨닫고 거기에 자신을 비춰보고 비판해 보고 생각해 보게 하옵소서.

종교적 선입견의 문제와 개혁 정신의 태도 3 <사도행전7>, 제10강 데살로니가에 전한 복음, 232쪽

“그것이 아주 옳다고 확신하고 받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의 거룩한 도리를 좀 더 받아 가면, 그 거룩한 도리를 좀 더 알았다는 새로운 지식의 터 위에서 그것을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비추어서 확인해 보고 옳은 것은 더욱 확신을 가지고 굳혀 가고 미비한 것은 보충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개혁 정신의 태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거룩한 도리의 터 위에서 옳다고 확신하는 것을 비추어 보게 하옵소서.

종교적 선입견의 문제와 개혁 정신의 태도 4 <사도행전7>, 제10강 데살로니가에 전한 복음, 233쪽

“기도를 하는 본의(本義)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기보다 남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데 자기는 어떤 시간에 나와서 기도를 했다는 것을 슬그머니 공로와 자기 자랑으로 가지고 있게 되고, 적어도 남에게 자랑은 하지 않지만 자기가 그것을 가치 있는 중요한 일로 여겨서 그것이 결핍되든지 그것을 중단했든지 할 때에는 갑자기 마음 가운데 파동이 일고 죄송하고 미안하다는 심정을 가지게 됩니다.”

기도로 자기 공로를 삼거나 죄책감을 가지지 않게 하시고,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과 거룩한 교통을 하게 하옵소서.

종교적 선입견의 문제와 개혁 정신의 태도 5 <사도행전7>, 제10강 데살로니가에 전한 복음, 234쪽

“자기가 마땅히 할 것을 잘하고 있다고 자기를 인정하는 아상(我相) 가운데에서 출발하는 것이 기도의 본의냐 하는 것입니다. 무릇 하나님 앞에 우리가 구하는 가운데 제일 중요한 문제는 자기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떡 일어나서, 거기다가 종교적인 자기를 현저하게 세우고 나가는 데에 중점을 둔다면 참으로 문제입니다. 이것이 하나의 예입니다. 찬송도 그렇고 다른 모든 것도 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반적인 은혜의 수단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 아상(我相) : “자기의 나르시시즘(narcissism), 자홀(自惚)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그것을 아상(我相)이라는 말로 자주 쓰고 있습니다.”, <사사기 소고 1>, 72쪽.

    “속에 있는 자아(自我)라는 것, 속에 있는 아상 (我相)이라는 것, 인간이라는 것, 인간의 공리주의 (功利主義)라는 것”, <신앙의 자태 1> 85쪽.

    “1. 『불교』 사상(四相)의 하나. 오온(五蘊)이 화합하여 생긴 몸과 마음에 참다운 ‘나’가 있다고 집착하는 견해를 이른다. 2. 자기의 처지를 자랑하여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마땅히 할 것을 잘하고 있다고 자신을 인정하는 아상 가운데에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종교적 선입견의 문제와 개혁 정신의 태도 6 <사도행전7>, 제10강 데살로니가에 전한 복음, 234쪽

“그러면 우리는 마음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하나님께서 가르치신 법에 대해서 우리의 마음자리를 어떻게 취하고 있습니까? 가령 데살로니가 사람과 같이 자꾸 설득해야 비로소 그 말을 받아들입니까, 아니면 베뢰아 사람과 같이 말씀 자체에 깊이 들어가서 받은 내용을 말씀에 의해서 자기가 증험하고 확인하고 살아갑니까? 그렇지 않으면 아덴 사람과 같이 무슨 새로운 소리를 자꾸 해 주어야만 하고 그렇지 않으면 흥미가 없다고 생각합니까? 말씀의 내용을 깊이 가르치고 그것을 들어 버릇하면 자꾸만 새로운 소리를 듣기 원하는 폐단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자기네의 생활에는 별로 접촉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말씀 자체에 깊이 들어가서 받은 내용을 말씀에 의해서 증험하고 확인하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종교적 선입견의 문제와 개혁 정신의 태도 7 <사도행전7>, 제10강 데살로니가에 전한 복음, 235쪽

“우리들은 항상 말씀을 들은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반성하고 자기를 다시 도마 위에 놓고 총 평가를 하고 붙일 것을 다시 붙이고 잘못된 것은 다시 제거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항상 우리에게 반복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고 말씀을 이론으로만 자꾸 가지고 있습니까? 개혁 신앙이라는 이론을 신학교 가서 쭉 배우면 별수가 생깁니까? 한우충동(汗牛充棟)의 서적들을 다 읽어 가지고 신학을 섭렵(涉獵)해서 안다고 해서 별스럽게 하나님 나라에 큰 보탬이 될 만한 것이 그 사람에게서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 한우충동 : 짐으로 실으면 소가 땀을 흘리고, 쌓으면 들보에까지 찬다는 뜻으로, 가지고 있는 책이 매우 많음을 이르는 말.

항상 말씀을 들은 다음에 저의 태도를 반성하고 저를 다시 도마 위에 놓고 총 평가를 하고 붙일 것을 다시 붙이고 잘못된 것은 다시 제거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항상 반복되게 하사, 하나님의 말씀이 거룩한 능력으로 저에게 존재하게 하옵소서.

데살로니가에 전한 복음 1 <사도행전7>, 제10강 데살로니가에 전한 복음, 237쪽

“예를 들면 이사야 53장에는 여호와의 종이 우리를 대신해서 고난을 받는 것을 가르치고 있고 다니엘 9:26을 보면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이 이미 확연한 역사의 사실로 그것을 목도한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죽지 않고 다 살아 있지 않느냐? 예수님은 돌아가시고 만 것이 아니라 부활하셨다. 천하에 고왕금래(古往今來)에 누가 이 조건에 충당한 분이 있느냐? 그분밖에 없지 않은가? 메시야로 오셔서 큰 권능으로 행하시고 그다음에 그는 고난을 받으시고 돌아가시고 그리고 다시 살아났다’ 하고 전한 것입니다.”

복음의 바른 내용 안에 서게 하옵소서.

데살로니가에 전한 복음 2 <사도행전7>, 제10강 데살로니가에 전한 복음, 240쪽

“바울 선생에 대해 현저하게 언제든지 붙어 다니는 유대인들의 태도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말씀의 거룩한 의미를 바르게 해석하고 깨달아서 구원을 받으려고 하지 않고 그 말을 꼬투리 잡아서 오히려 자기의 목적에 합당하게 가장 그럴듯하게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예수는 메시야고 메시야는 왕이다’ 이러면 ‘메시야, 예수라는 임금이 따로 있다’ 벌써 그리로 논리는 뛰었습니다. 가이사는 임금이 아니고 이 메시야 예수가 임금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이 가이사가 임금이 아니라는 말을 한 일도 없고 그의 사상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예수가 메시야라고 할 때에는 가이사와 대립되는 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문제는 그렇게 끄집어내는 데에 있습니다. 이런 괴악한 생각은 오직 마귀의 충동을 받아서 독한 시기와 미움이 속에 있을 때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거룩한 의미를 바르게 해석하고 깨닫게 하옵소서.

데살로니가에 전한 복음 3 <사도행전7>, 제10강 데살로니가에 전한 복음, 241쪽

“자기 마음 가운데 ‘이것이 받아서 믿어야 할 진리라면 이것은 확신을 가져야 하겠으니까 확신을 가질 조건들을 내가 좀 더 찾아야겠다’ 하고 찾아 나간 것입니다. 이런 태도와 품성은 고귀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도시 한가운데에 큰 무리가 모여 있는 데가 아니라 베뢰아같이 큰길 바깥에서 조용히 숨어서 살던 사람들에게 있던 품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간곡한 심정을 가지고 받아들이고 거기에 대한 확신을 보태고 증가시키기 위해서 과연 그러한지 여부를 더 연구해서 제 것으로 삼는 태도가 있게 하옵소서.

기도 1 <사도행전7>, 제10강 데살로니가에 전한 복음, 241쪽

“거룩하신 주님, 주님이 저희에게 고귀한 말씀을 주시면 그것이 말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의 큰 사실을 우리에게 알게 하시면 하나님의 나라는 그냥 그런 이론과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큰 권능에 있는 까닭에 그로 말미암아 저희가 권능을 얻고 그 권능에 접촉하기를 늘 원하오며 그러기 위해서는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의 참된 의미와 심오한 것들을 스스로 개척하고 노력해서 성신님의 조명하심과 은혜 주시고 깨우쳐 주시는 속으로 들어가서 자기가 직접 터득해 나가고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야 할 것을 아나이다.”

기도 2 <사도행전7>, 제10강 데살로니가에 전한 복음, 242쪽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의 말과 이론으로만 받아 버리고, 문제가 있을 때에나 악한 마음이 꾈 때에 그릇된 데로 들어가서 중상하거나 모략하거나 불의를 행하는 일들이 없게 하시고 우리가 자칫 잘못해서 방황하며 그릇된 완고 속에 빠져 들어가는 일이 없게 하시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에서 참으로 아름다운 품성을 언제든지 잘 보유하고 유지하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1980년 8월 31일 주일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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