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3)

“종교라고 할 때는 전 세계의 역사의 성격을 포함해야 하는 것이지, 문화의 거대한 성격 가운데 부분을 취해서 종교라고 하면 그것은 타락한 것입니다. 그런고로 종교라는 말보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이 훨씬 포괄적인 것이고 좋은 것입니다.” 부분적인 것에 매몰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늘 생각하게 하옵소서.

“‘거기에 하나님의 종교가 있을지라도 그것은 의미 없다. 너희가 너희 전체의 생활과 너희의 권력과 너희의 영광의 가장 구체적인 표현을 할 때 하나님 나라의 패턴과 하나님 나라의 계시에 의해서 하나님 나라의 능력으로 움직이지 않는 이상에는 아무리 여호와를 섬기는 종교를 가졌을지라도 제국이 와서 너희를 병탄하는 것이다‘ 하는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역사적인 의의라는 것을 우리가 항상 주의해야 합니다.” 일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패턴과 하나님 나라의 계시에 의해서 하나님 나라의 능력으로 움직이게 하옵소서.

“오늘날의 기독교가 생활이 아니고 종교로 타락하면 하나님은 여전히 거기서 영광을 떠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중략) 오늘날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이 우리의 생활에 직면한 것이 아니거나 기독교의 참된 진수가 자기의 전체 생활 혹은 인간의 전체 생활을 포괄하는 것이 아니고 독특하고 괴이하고 괴상한 종교적 생활을 기독교라고 해서 그리로 사람을 몰아넣으면 거기에는 영광이 떠나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은 나중에 그 점을 강조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가 말씀한 기독교라는 것은 생활의 대종(大宗)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 大宗 : 사물의 근본. 기독교의 참된 진수가 전체 생활을 포괄하게 하옵소서.

“왜 먹고사느냐 하는 문제에 대한 자기의 해답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정부가 여기 있다’ 하고 그 해답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희를 내셨고, 하나님이 너희를 먹고살게 해 주셨고, 너희로 하여금 목적을 가지고 살게 하신 것이다’ 하되 바울 선생은 이것을 하나님의 정부라는 형태로 설명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부에서 먹고살며, 하나님의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어떤 정부를 세우셨고, 그 정부가 어떻게 인류의 정부 위에, 역사를 창조해 가는 모든 인류 위에 친히 통재하시느냐 하는 것을 한 모델을 들어서 이야기해 나간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목표를 나중에 분명히 일러 주었습니다. ‘왜 그렇게 하신 줄 아느냐? 그 거룩한 은혜를 구현하시려는 것이다. 그 거룩한 은혜의 구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공로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의롭다 하심이 무엇입니까? 의롭다 하심은 죄 없다 하시는 하나님의 선포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둘째의 사실은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같이 이제는 하나님의 거룩한 권속(眷屬)이 되어서 하나님이 친히 먹이시고 기르시고 세우시며 생존의 목표를 세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휘오쎄시아, 즉 양자(養子)로 삼는 일이 늘 거기에 붙어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셋째로, ‘하나님께서 너희를 의롭다고 하시면서 너희를 세우시는 뜻은 최후에 너희를 만물의 후사로 세우시려는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의 상속자이다.’” 죄 없다 하시고, 친히 먹이시고 기르시고 세우시며 생존의 목표를 세워 주시며, 하나님의 상속자로 삼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인생의 목표가 어디에 이르며 우리의 행진이 어떤 목적지에 도달하는가를 가르친다’ 하는 것입니다. 만물의 후사, 즉 하나님의 상속자로 서는 것입니다. (중략)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네게 주셨을 뿐 아니라 그를 아낌없이 주셨으므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만물을 네게 주신다. 왜 우주 만물을 창조한 줄 아느냐? 네게 주려고 창조한 것이다’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상속자로 인생의 목표를 삼고 행진해 나가게 하옵소서.

“강설을 할 때에는 항상 기독교의 대종(大宗)을 이야기해야지, 부분적이고 지엽적이고 저변적인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그것으로 끝나면 기독교의 전모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중략) 기독교의 대종을 파악하지 못하면 어디에서 주저앉는가 하면 종교적인 생활 문제에서 주저앉는 것입니다. (중략) ‘기도를 많이 해야겠다. 성경을 많이 보아야겠다. 또한 예배당에 열심히 나가야겠다’ 하는 데에 그냥 주저앉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 운동을 하는 데 뛰어들든지 기독교적 박애 운동을 해야겠다든지 무슨 운동을 해야겠다든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든지 죄를 이기고 살아야겠다든지 하는 것을 최고로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기독교의 대종을 파악하고 이를 중시하게 하옵소서.

“이스라엘을 포기했다고 선언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자기 동족에 대해서 끊임없는 슬픔과 고통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뒤집어서 말하면, 그 백성에 대해서 끊임없는 슬픔과 고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의 진행을 위해서는 그들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고 전해도 바른 도리에 대해서 귀를 기울이지 않고 나중에는 심지어 자기의 그릇된 선입관을 가지고 반대하고 비방하고 나서면 그때는 포기하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포기하니까 발의 티끌까지 털어 버리고 떠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보수요 정통이라고 해서 끝없이 붙드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 대해서 애착을 보이는가 안 보이는가 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하나님의 바른 도리에 대해서 귀를 기울이고 애착을 가지게 하옵소서.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하나님 나라의 대도를 늘 파악하고 살아야지, 지엽적인 문제로 콩이야 팥이야 하고 논하는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누가 하나님 말씀의 대도를 늘 파악하고 거룩한 목표를 향해서 자꾸 전진하고 나가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다가 넘어졌으니 못 쓰겠다든지 그 사람이 이러니 못 쓰겠다든지 하는 것을 가지고 너무 논란하지 않는 것이 정당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대도를 늘 파악하고 거룩한 목표를 향해서 자꾸 전진해 나가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종교인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식답게 역사 위에서 역사의 책임자답게 움직이라고 하십니다. 역사의 책임자란 무엇인가 할 때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역사(history)를 땅 위에 구현할 책임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자식답게 역사 위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거룩한 역사를 땅 위에 구현하는 책임자답게 움직이게 하옵소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수용력이 있는 동안에는 전하는 것입니다. (중략) 항상 끝없이 진리를 전달하더라도 교회의 전체적인 태도나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조가 결국 거기에 대해서 반응을 일으키지 않고 차라리 점점 더 굳어지고 저락(低落)해 갈 때에는 끝없이 전하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받는 사람에게만 전하고 나머지에게는 분명한 태도를 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반응하며 수용하게 하옵소서.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하나님 말씀의 대도라야 하지, 대종과 대도를 떠나서 지엽적인 것을 이야기하면서 우리의 태도를 명백히 한다고 하면 무엇이 되느냐 하면 항상 분열하는 분파(sect)에 불과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대도를 전파하는 큰 능력을 늘 가지고 있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나를 늘 붙들고 계신 그 품안에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계신 그 품안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스스로 걸어가고 내가 붙들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유리(遊離)된 채로 내가 하나님을 붙들려고 하는 것은 할 수 없는 일이고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내가 어떻게든지 하나님 앞에 잘 믿는 사람이 되겠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늘 하나님의 자식답게 나타내시는 위치 가운데 떠나지 않고 있어야 합니다. 경건하고 거룩한 생활 태도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늘 하나님의 자식답게 나타내시는 위치 가운데 떠나지 않고 있게 하옵소서. 경건하고 거룩한 생활 태도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옵소서.

“그 마음의 상태가 영생을 받기에 합당한 자로 나타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인가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기뻐한 사람들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기뻐하고 찬송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기뻐하게 하옵소서.

“두 사도는 핍박을 받아서 떠났을지라도, 그 말씀을 참으로 받은 사람들, 즉 영생을 받기에 해당한 자로 나타난 사람들은 말씀을 기뻐하고 말씀을 찬송하면서 말씀을 두루 전파하니까 말씀이 그 지방 일대로 두루 퍼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 말씀은 아무 몰락이나 정체나 그런 것이 없이 그대로 진행하고 나갔습니다.” 말씀을 기뻐하고 말씀을 찬송하면서 말씀을 두루 전파하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성신님이 늘 저희들의 마음에 밝히 빛을 비추어 주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가장 중요한 것과 체계 있고 논리성 있게 그 말씀에 진술된 거룩한 큰 도리를 항상 잘 깨달을 수 있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계획의 전모에 대해서 저희가 그 깊이를 다 파악하지 못할지라도 대체로 늘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저희들을 이끌어 주시며, 또한 이 세상을 볼 때에도 항상 그 전체의 의의를 발견할 수 있게 저희의 마음을 길러 주시고 세워 주시며, 이 악한 세대에 저희들이 가는 이 길을 주께서 붙들어 주셔서 좌우로 치우치지 않게 하시고 그릇된 데로 들어가지 않게 하시고 오류와 미망과 그로 말미암은 자기주장과 독선과 교만 가운데 빠져 들어가지 않게 하시고, 항상 연약한 저희가 주님을 의지하며 자기 자신을 올바로 평가한 그 겸손한 위치에서 주님의 거룩하신 사랑의 품안에 늘 있고 그 은혜에 항상 거하게 하시옵소서.”

“저희로 하여금 주께서 저희를 세우시고 택하신 거룩하신 목적을 이루는 자식들이 되게 하시고, 그것을 딴 것으로 변조해서 독선적인 자기도취와 독단 가운데 빠지는 일이 없게 하시고, 자칫하면 빠져 들어가기 쉬운 이런 사이비적인 열심과 경건에 빠져 들어가는 어리석음이 없도록 붙들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인간의 정열을 가지고 종교를 행하려고 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인간의 현실 가운데 주저앉아 있는 것을 마치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신앙의 생활인 것같이 오해하는 암매와 어리석음이 큰 것을 알게 하시고, 그런고로 항상 신령하고 거룩한 위치에 있게 하시고 참된 경건이 저희를 늘 지배하게 하시며,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품에서 잠시도 떠나지 않게 붙들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1966년 4월 13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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