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강 백부장의 신앙(2)

백부장의 모든 행위는 신앙의 표출 <신앙의 자태2>, 제2강 백부장의 신앙(2) 중 54쪽.

"신앙이라는 것으로 그 사람을 보면, 여타의 문제는 다 신앙의 결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백부장이라는 사람을 우리가 평가하고 해석할 때는 무엇보다도 항상 그가 예수님에게 시종여일(始終如一,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음)하게 대한 태도에서, 다른 말로 말하면 신앙이라는 점에서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상의 모든 행위가 신앙의 표출이 되도록 가르치시고 이끄시옵기를 기도합니다.

참된 신앙은 전인격으로 나타남 <신앙의 자태2>, 제2강 백부장의 신앙(2) 중 59쪽.

"참된 신앙은 그것이 항상 전인적인 까닭에 그 인격의 어떤 한 부분만으로 신앙을 만들어 낼 수가 없습니다." "백부장이 가지고 있는 특성, 곧 그의 신앙은 그것이 전인간적으로 항상 움직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의 종에 대해서도 따뜻하게 대하는 인간미가 풍부하고, 아름다운 정서가 풍부한 그의 태도도 단순한 정의 만족을 위한 태도가 아니고, 신앙으로 말미암은 좀더 근거 있는 태도입니다."

일상에서 보이는 인간미가 신앙으로 말미암아 나타나게 하시고, 전인격적으로 참된 신앙을 표출할 수 있도록 가르치시고 인도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백부장의 신앙의 상태 <신앙의 자태2>, 제2강 백부장의 신앙(2) 중 60쪽.

"백부장이 보인 자기 종에 대한 따뜻한 태도에는 단순히 개인적인 인간미로서만 보아 넘기기가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미가 있는 사람이라도 일단 그가 신앙으로 들어가면 과거와 같이 단지 인간미라는 정서미(情緖美)에서만 움직이지 않고, 이번에는 신앙이라는 확실한 근거 위에서 자기 사상이 그렇고 주의(主義)가 그러니까 끝까지 철저하게 신념대로 나가야겠다는 것이 뒷받침이 되어 비로소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백부장의 신앙의 상태입니다."

신앙이라는 확실한 근거 위에서, 자기 사상과 신념으로 일상 속에서 마음을 쓰고 느끼며 활동하도록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사람의 덕도 전능하신 주의 손에 맡겨져야 정상적으로 쓰여짐 <신앙의 자태2>, 제2강 백부장의 신앙(2) 중 63쪽.

"사람이 가지고 있는 어떠한 덕이나 도덕적 품성도 일단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는 위치로 돌아간 후에 새로 그리스도적인 바른 인식론 하에서 그것이 세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항상 주의할 것은 신앙의 덕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인간의 도덕과 양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도덕을 포함해 가지고 신앙의 덕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강한 의지를 가지고 늘 밀고 나가는 이런 사람에게 신앙이 들어가면 그 의지를 그리스도를 위해서 참 잘 쓸 수 있다고 해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주관적인 여러 품성의 발휘는 일단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는 확실한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 경험 안에서 주신 은사가 하나님의 성신으로 말미암아 바로 쓰이게 될 때, 그 의지의 작용에서 있어서는 아니될 것이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의지가 강한 사람은 그 강한 의지를 포기해야 하느냐 하면 그것이 아니라 강한 의지를 의뢰하는 그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있어서는 아니될 것이란 그것을 의뢰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중략) 과거 자기 재주를 믿던 그것을 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중략) 아무리 자기에게 재주가 많고 아무리 의지가 강하다고 할지라도 이것으로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거룩한 표준에 도저히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은 도무지 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고 일단 자기 재주를 의지하던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게에 못박혀 죽었다는 것은 어떠한 것으로 나타나느냐 하면, 예컨대 과거에 자기 건강에 의지하던 사람이 자기 건강에 의지하지 않고 주께 의지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자기 건강은 자기가 유지할 줄 알았던 그런 생각을 안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내 건강을 뺏으시면 내가 당장에라도 몸져 드러눕게 되고 당장에 병신이 되거나 죽을 수도 있다' 하는 것을 확실히 늘 느끼는 사람이 됩니다. 이런 사람은 '주께서 허락하시면 살기도 하고 이것도 저것도 하리라' 하고 이렇게 믿게 되지, '자, 나는 건강하고 튼튼하며 재주 있고 생각이 있는 사람이다. 또 경험이 있어 장사를 잘하니 아무 성에 가서 오랫동안 장사를 하자. 그래서 몇 년 동안 있으면서 이(利)를 남기자'(약 4:13) 하고 이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의지하는 사람에 대해서 성경은 "그러한 자랑은 악한 것이다. 네가 허탄한 것을 자랑하니, 이런 자랑은 다 악한 것이다"(약 4:16)고 했습니다. 그것은 악한 것이니 그 악한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자기에게 있는 은사는 그것대로 감사할 일이지만, 그것으로 하나님 나라의 일을 자기가 이룰 수 있다고 그렇게 믿어서는 안 됩니다. 그에게 튼튼한 의지가 있고 아주 예리한 지성이 있으며 혹은 풍요한 정서와 정조가 있을지라도 그것들이 이제는 성신님께 부탁함이 되어서, 곧 전능하신 주의 손에 맡겨져야 정상적으로 쓰이는 것입니다. 그것을 자기가 의지하지 않아야 합니다. 또 자기가 그것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든지 주장할 수 있다든지 자기의 것이라고 하든지 하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되어야 합니다."

자신 있고 잘 하는 것을 믿고 의뢰하지 않고, 그 은사를 성신님께 의탁하여 전능하신 주의 손에 맡겨 정상적으로 쓰이도록,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백부장이 이스라엘 사람을 사랑한 진정한 이유 <신앙의 자태2>, 제2강 백부장의 신앙(2) 중 66쪽.

"우리는 사람인데 사람은 하나님 당신의 모양으로 지음을 받았으니 가장 아름답고 가장 위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그 아름다운 모양을 이지러뜨려서 부패하고 타락한 것이 한꺼번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사람은 세상의 모든 것에 비교해 볼 때 볼품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볼품이 없고 더럽기만 한 것이냐 하면 비록 부패하고 타락한 형상일망정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인 까닭에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도 이스라엘 사람의 손에 의해 왜곡되고 이지러지고 형해화(形骸化, 내용은 없이 뼈대만 있게 된다는 뜻으로, 형식만 있고 가치나 의미가 없게 됨을 이르는 말)되었으며, 어느 때는 그 속에 이교적인 것까지 포함되기도 했지만, 거기에는 계시라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위대한 것입니다. 헤브레이즘은 특수한 계시의 요소를 포함하지 아니한 다른 어떤 철학이나 정치나 예술적인 창작보다도 더 위대한 영향을 그후 인류 역사 위에 남겨 주고 갔습니다. 민감한 사람들은 이것을 어느 시대든지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날의 기독교의 형태로 기독교를 받아들이려 할 때 오늘날의 기독교의 형태가 다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거기에는 타락의 요소가 많이 있고 부패의 요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그 곳에 있는 거룩한 계시만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 거룩한 계시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기독교라는 것을 그 부패한 껍데기라도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는 거기서 그 계시만을 그냥 빼내 올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계시는 어떤 모습이든 형태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이 요구된 형태에서 그것이 가지고 있는 부패와 타락의 요소가 제거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를 제거하려면 먼저 받아들인 기독교에서 그 속에 있는 가장 진수인 거룩한 계시를 바로 알고 바로 깨닫고 바로 체득해야 합니다. 그렇게 한 다음에 그에 알맞은 바른 형태를 취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교회는 언제든지 부단한 개혁을 요합니다. 부단히 부패한 요소를 삼제(芟除,풀을 베어 없애 버림)하고 거기에 아름다운 요소를 넣어야 합니다. 백부장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사랑했다고 하는 것은 그가 유대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계시의 자태를 민감하게 포착할 수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이것이 백부장의 위대한 신앙의 첫째 기초입니다."

어지러지고 부패하고 타락한 중에도 그 속에서 늘 거룩한 계시의 진수를 바로 알고 바로 깨닫고 바로 체득하며 바른 형태를 취하도록 부단히 개혁해 갈 수 있도록 가르쳐주시고 인도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특별 계시에 대한 백부장의 친화성 <신앙의 자태2>, 제2강 백부장의 신앙(2) 중 69쪽.

"기독교는 어떤 점에서 독특하냐 하면 그 내용이 이교의 그것과 전연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내용이 독특한 것은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 입니다만, 기독교가 특별히 독특한 것은 항상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을 계시하신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에게와 기독교 안에는 하나님께서 일반 계시로써 전개하신 것과 다른 독특한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특별한 계시로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미 이교적인 환경과 세계에서 자라며 많은 경험을 한 백부장으로 하여금 독특한 매력을 느끼고 찾게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을 사랑한다든지 혹은 그 사람들을 위해서 회당을 지어 준 것은 곧 그의 종교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은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나타나 있는 독특한 계시에 대한 그의 친숙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기호가 차츰 차츰 깊이 들어가서 마침내 그 계시를 마음으로 사랑하여 그 사람들의 종교 행동을 훨씬 편리하게 할 양으로 회당을 지어 준 것으로 보여지는 것입니다. 이 독특한 계시가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가장 독특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경전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의 특별 계시입니다. 그 계시가 나타나는 형식의 첫째는 개념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하시기 위한 말씀입니다. 개념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할 때, 그것은 우리에게 들려 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 다음은 이 말씀이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이는 형태로 형상화하여, 표상화하여 나타나는 성례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특성이라고 할 때 늘 첫째는 말씀이요 둘째는 성례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특징, 혹은 교회가 다른 어떤 종교의 종교 행동과 서로 다른 것은 무엇이냐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로 선포되고 해명된다는 그 점입니다." "성례는 한 개의 상징으로서 기념은 기념이지만, 성례의 집행은 우리끼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언약의 표징이 되는 까닭에 언약하시는 하나님의 신이 거기에 같이 거하셔서 역사하십니다. 마치 우리가 말씀을 바로 집행하는 데, 곧 말씀을 바로 먹인다는 사실을 집행하는 데 역사하시는 것과 똑같이 성신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들려주시는 말씀을 먹을 때 성신님이 역사하시고, 보여주시는 성례에 하나님의 신이 함께 거하시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 계속 주의 깊게 생각한 백부장 <신앙의 자태2>, 제2강 백부장의 신앙(2) 중 83쪽.

"그가 예수님을 공평하게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된 것은 그가 계시에 접촉해서 그것의 아름다움을 봄으로써 비로소 가능했습니다. 그럴 때 그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여기저기서 들은 것입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는가에 따라서 무엇을 볼 때 그 생각하는 바에 따라 주의하고 평가를 하게 됩니다." "유대교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을 한 백부장으로서는 아무래도 예수님에 대해서 그러한 관점에서 주의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희한한 인물이다" 하는 정도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차참차츰 예수께서 하신 여러 가지 일에 대해서도 듣고, 또 가버나움에서 여러 사람을 낫게 하신 일에 대해서도 들었을 것입니다. 시몬의 장모가 열병에서 나은 것과, 백부장과 아마 알음알이(서로 가까이 알고 지내는 사람)로 잘 알고 있던 그 왕의 신하의 아들도 멀리서 말씀 한 마디로 나았다는 이야기도 벌써 한 일 년 전에 들어서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나 일상 속에서 예수님에 대해 늘 주의 깊게 생각하도록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구원의 신앙에서 그 대상의 중요성 <신앙의 자태2>, 제2강 백부장의 신앙(2) 중 87쪽.

"백부장의 신앙에 나타난 중요한 점은 예수님께 대해서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바르게, 깊게 알았다 하는 것입니다. 백부장의 신앙의 특성은 그 신앙의 지적 요소로서 대상이신 예수님을 바르게 깊이 알았다는 것이며, 깊게 알 뿐만 아니라 거기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다른 요소가 합쳐졌다는 것입니다. 즉 안 그것을 의지했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말씀 한 마디면 고치실 분이라는 것을 아는 까닭에 그것을 의지해서 "그러니까 말씀 한 마디만 해주십시오" 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점은, 신앙이 깊어지려면 신앙의 각 요소가 다 깊어져야 하고, 그렇게 해서 어떤 행동을 일으키려면 자기가 '과연 그렇다' 하고 신의(信依, 믿고 의지)하고 신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신의하고 신용할 수 있으려면, 신용할 만한 내용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에서 첫째로 중요한 것은 대상입니다. 대상을 바로 믿고 깊이 믿는 데서 신앙은 깊어지는 것입니다." "인식이 바르고 깊으면 그만큼 더 붙들고 매달리는 것입니다. 인식한 그만큼 거기에 의한 행동을 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깊게 믿고, 예수님을 더 붙들고 매달리는 일상이 되도록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구원의 신앙에서 그 대상을 잘못 생각한 사례들 <신앙의 자태2>, 제2강 백부장의 신앙(2) 중 88쪽.

"이 백부장의 경우를 볼 때, 평소 하나님 말씀을 그가 사랑하고 보았다 할지라도 그것만으로 구원 받는 높은 신앙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의 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의 대상을 놓고 볼 때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일반적인 의미의 대상이 있고 독특한 의미의 대상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의미의 대상은 하나님의 말씀에 담겨 있는 전체의 하나님의 계시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일반적인 신앙의 대상입니다. 나는 무얼 믿느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표시되어 있는 바 계시를 믿는다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곧 성경에서 분명히 가르친 것이든지, 그렇지 아니하면 성경 가운데 나타난 기록에서 정당하고 또 반드시 있어야 할 추리로 말미암아 바로 결론을 끄집어 낸 어떤 도리를 말합니다. 그 도리를 믿는다고 할 때 그것을 일반적으로 바른 신앙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일반적인 의미의 바른 신앙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 할 것은 카톨릭적인 생각이 이 일반적인 의미의 신앙의 대상에서 때때로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카톨릭은 말하기를 교인은 그 의무로서 반드시 에클레시아 도켄스(ecclesia docens) 곧 사제, 주교, 대주교, 추기경, 교황으로 구성되어 있는 '가르치는 교회'가 "이것은 하나님의 계시의 한 부분이라"고 선언한 것을 믿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 까닭에 거기에 의해서 교회가 결정해 준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소위 복음에 무엇을 더 가하는 행동인데, 나중에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는 이와 같은 것을 카톨릭적 오류라고 해서 강력하게 비판하고 반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프로테스탄트 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오류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예컨대 그들은 교회의 전통을 하나 세우고 "우리는 이것을 신조로 믿는다. 우리는 이렇게 해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하고 나중에 그것을 거의 신조와 비슷하게, 철칙인 양 믿고 나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 생각 곧 유추(類推, 미루어 짐작함, analogy)가 틀린 것이 큰 문제입니다. 이렇게 해서 구약의 율법도 아니고 신약적인 교훈도 아닌 그런 것을 가지고 "이것은 성경 말씀이라. 하나님 말씀이라"고 막 우겨댑니다. 이런 것이 카톨릭하고 뭐 다른 것이 있습니다까? 우리가 구원의 신앙이라는 것을 말할 때 하나님이 계시하신 것은 무엇이 됐든지 믿는 것은 일반적인 신앙이지만, 그 일반적인 신앙만 가지고 구원의 신앙이 확증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새벽 기도회를 하는 교회가 안하는 교회보다 더 신령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신앙을 바르게 붙잡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말들은 신앙의 대상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대상으로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이 계시하신 것입니다."

신앙의 대상이 되지 못할 것들을 믿지 않게 하시고, 일반적으로 믿어야 할 것과 구원의 신앙에 꼭 필요한 것을 잘 분별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다 믿지는 못해도, 반드시 믿어야 할 내용은 꼭 믿도록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구원의 신앙의 확증 - 계시 가운데서 어떤 것을 꼭 믿어야 함 <신앙의 자태2>, 제2강 백부장의 신앙(2) 중 91쪽.

"계시하신 것을 일반적으로 믿는다 하는 것은 구원의 신앙을 확증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의 신앙을 확증하려면 그중에 어떤 것을 독특하게 꼭 절대로 확신해야 합니다. 그 이외에 다른 것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믿는 것뿐이라면 그의 신앙이 확실히 구원의 신앙에까지 자랄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또 어떤 것은 믿는다고 하지만 시인하는 것뿐이지 확실히 그대로 신뢰하고 신의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의지해 버리자고 이야기해 놓고서도 의지하지 못합니다. '아니, 그래도 내가 할 것은 내가 해야지' 하면서 의지하지 못합니다. 자기가 할 것을 자기가 생각해 내는 것인 줄 압니다." "그 말씀을 의지하는 사람 같으면 '하나님이 주신다고 했으니까 나는 주실 것을 기대한다. 그러면 기대하는 나로서는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서 지금 자기가 할 것을 알아내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는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계시를 일반적으로 믿는다고 하지만 반드시 다 믿느냐 하면 그것을 반드시 다 믿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 계획과 그 말이 상충될 때 자기가 양보하려고는 아니합니다. 그만큼 사람들은 계시하신 것을 반드시 다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믿음이 약한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나는 계시를 다 믿는다"고 하는 것을 하나씩 하나씩 따지고 보면 자기가 확실히 그대로 의지하고 사는 것도 있지만, 거기에까지 아직 이르지 못하고 사는 것도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은 아직 구원받지 못했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으로는 구원의 신앙으로 확증이 안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계시를 다 믿지 못한다고 해서 확증이 안된다는 말이 아니라, 거기에는 꼭 믿지 않으면 안 될 것들이 있어서 우리가 그것을 꼭 믿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하나님의 계시가 상충할 때, 믿음이 부족하여, 자신을 내려놓지 못하고 주님을 다 의지하지 못하는 것을 불쌍히 여기시고, 부족한 것은 많지 구원의 신앙에 꼭 필요한 것은 철저히 믿고 의지하도록 붙들어 주시길 기도합니다.

기도 <신앙의 자태2>, 제2강 백부장의 신앙(2) 중 94쪽.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그렇게까지 높이 숭상해야 할 분으로 생각지 못했을 때에 백부장은 지극히 높고 거룩한 분으로 생각할 뿐 아니라 신성을 가지신 분으로 생각하는 데까지 이른 것을 저희들이 이제 생각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그의 생각의 미침이 어떻게 그렇게 기묘하게 그의 안에 있게 됐는가를 저희들이 탐색하면서 저희들 자신도 하나하나 참으로 칭찬을 받는 높고 거룩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기를 바라옵나이다. 그런 믿음이 있어야만 이 괴악한 세대, 험악한 세대, 또 싸워야 할 일이 많고 달여갈 길이 험준한 이 세대에, 이 역사의 과정 위에 저희가 능히 서서 아버님께서 저희에게 요구하시는 열매를 맺으며 주신 바 사명을 능히 수행할 줄로 믿사옵나이다. 아버님이여, 저희들을 가납하시옵고, 저희들이 아버님께서 기뻐이 받으실 만한 믿음을 가지기를 원하여 믿음의 자태에 대해서 주께서 여러 모로 가르쳐 주시는 것을 깨닫고 배우고자 하오니, 이제 더 깊이 가르쳐 주시고 깊이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모든 것을 다 맡으시고 친히 주장하시사 아버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시고 저희 교회에 아버님께서 은혜 베푸사 거룩한 사명과 저희의 가는 길에 거룩한 목표를 명확하게 보여 주시는 대로 바로 파악하고 확실히 파악해서, 저희의 생이 저회적이고 일반적인 데에 그냥 빠져 들어가지 않게 하여 주시고, 일반적인 이 타성과 고루한 생활 가운데 들어가지 않게 하여 주시며, 고결하고 고귀한 역사적인 사명에 대한 각성이 확실히 있는 사람과 같은 생활 태도를 취해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968. 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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